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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가 뭐길래

<네고왕>으로 보는 당근마켓과 BBQ의 조직문화

by easyahn 2020. 9. 14.

 

요즘 유튜브에서 광희의 '네고왕'을 재밌게 보고 있다. 광희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회사 제품의 불만사항을 들은 다음 본사에 가서 전달하고, 그 회사 대표와 협상(네고)을 하는 컨셉이다. 광희가 대표에게 제안하는 내용은 다소 황당한 것부터(ex.당근마켓 사용자끼리 만나서 거래할 때 바니바니로 인사한다)부터 가격 할인이나 1+1 행사 같은 프로모션까지 다양하다. 

 

광희가 본사에서 협상을 하는 장면이 영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다보니, 네고왕을 보면 그 회차의 주인공이 되는 회사의 내부 모습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조직문화 담당자 입장에서 말하면 각 회사의 인공물을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직원들이 입는 옷, 사무실의 구조, 직원간의 호칭, 대표 자리의 모습, 네고 과정에서 대표가 의사 결정하는 방식 등등. 이번 글에서는 1편 BBQ 편과 3편 당근마켓 편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장면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장면 1. 유니폼 입는 BBQ 직원들

 

특이한 유니폼을 입고 있던 BBQ 직원들

"무슨 여행산가 봐 여기는"

 

광희가 BBQ 본사 사무실 직원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광희가 이런 말을 한 이유는 직원들이 굉장히 화려한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다. (나중에 영상에서 밝혀지지만 직원들이 입고 있는 셔츠의 무늬는 모두 닭이다.) 나는 유니폼 착용이 굉장히 특이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직무면 모르겠지만 사무직 직원이 유니폼을 입는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유니폼 착용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니폼을 일부러 입힌다는 건 직원에 대한 회사의 통제가 강하고 회사와 직원의 일체감을 강조한다는 의미다. 옷차림은 사적인 영역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패션 스타일이 있고 그걸 통해 자신을 표현하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으라는 것은 '너의 개인 취향보다 회사의 지침이 중요하다'이다.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고, 그걸 반드시 따르도록 강하게 통제하는 곳에서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을 입는 조직 중에 대표적으로 군대가 있다. 실제로 잡플래닛 후기를 살펴보니 '군대 같다'는 키워드가 곳곳에서 보였다.    

 

장면 2. 별도의 대표 사무실이 없는 당근마켓

 

따로 대표 자리가 없는 당근마켓 

"너무 대접을 못 받는 것 아니에요?"  

 

당근마켓은 대표 사무실이 따로 없다. 대표자리도 다른 직원들이 평소에 업무하는 공간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다른 직원보다 더 못한 느낌이 있을 정도다.(개발자는 큰 모니터라도 있지만 당근마켓 대표 자리 근처에는 전자 파리채가 널려 있다...) 오죽했으면 광희가 대표가 회사에서 대접을 못 받는다고 했을까.

 

광희와 네고를 하는 장소도 그냥 일반 직원들이 쓰는 회의실이다. 회의실은 다른 사람이 쓰고 나가서 그런지 이곳저곳 펜이 널려있고 너저분하다. 여기서 광희가 하는 말이 굉장히 의미 있다. "대표가 와 있어도 아무도 안 치우잖아" 보통 회사라면 대표가 한번 뜨면 누군가 나서서 테이블을 정리하고 대표가 앉을 의자를 가져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광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직문화적 현상을 짚어준다

당근마켓에서 대표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특별히 대접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냥 조직 내에서 대표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한 명의 직원일 뿐이다. 보통의 조직에서 대표라는 타이틀에 부여되는 권위나 위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당근마켓은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고, 대표와 직원 간 소통이 원활할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장면 3. BBQ와 당근마켓 대표가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

 

두 회사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대표들이 광희와 협상하는 방법이다. 광희의 협상전략은 일단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던진 다음 점점 현실적인 타협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다. 광희가 말도 안되는 조건을 던지는 건 서로 줄다리하는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BBQ 대표와 협상할 때 일단 광희는 말도 안되는 조건을 막 던진다. "18,000원짜리 치킨을 11,000원으로 할인하고 치즈볼까지 껴주세요!"  치즈볼이 1000원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18,000원짜리 치킨을 10,000원에 팔라는 이야기다. 거의 절반 가격에 팔라는 황당한 제안이다. 가격 할인은 매출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이다. 

 

BBQ 대표는 큰 고민 없이 오케이를 외친다. 광희도 당황할 정도의 통근 결정. 사전에 협의된 내용일 수도 있으나, 영상에서는 리얼이라고 강조한다. 영상 기준으로 보면 BBQ는 의사결정에 있어 대표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이런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위에서 한번 결정되면 아래는 무조건 따라야 할 확률이 높다. 

 

광희가 막 던진 제안을 덥썩 받는 통큰 BBQ 대표. 광희가 당황할 정도였다. 

당근마켓의 협상 장면은 조금 다르다. 광희는 당근마켓 대표에게 판매 물건에 대한 체크 리스트를 앱 내에 업데이트해달라고 요구한다. 대표의 반응은 "카이(개발자)에게 물어봐야 하는데..."다. 제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결정을 하기에 앞서 실무자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겠다는 뜻이다. 

 

"네고왕은 대표와 이야기하면 끝나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일이 많아" 

 

대표의 행동에 대한 광희의 대사는 당근마켓의 의사결정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근마켓은 하향식의 의사결정 방식이 아니라 담당자 한 명 한 명의 의견이 중요한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다. 당근마켓은 대표가 독단적으로 뭔가를 결정하는 일은 많지 않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광희가 앱 담당 직원이 오케이 했다고 하자 그제서야 당근마켓 대표는 그렇다면 괜찮다고 광희의 제안을 수락한다. 이 장면도 당근마켓이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가졌다는 심증을(?) 굳힌다.

 

담당자가 오케이 했다는 의견을 들은 다음에야 광희의 제안을 수락하는 당근마켓 대표

 

광희라는 리트머스지가 보여주는 각 회사의 조직문화

 

평소에 재밌게 보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각 회사의 조직문화를 엿보게 될 줄은 몰랐다. 예능 보면서 이런 걸 생각하는 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까. 네고왕은 조직문화 담당자 입장에서는 여러회사의 조직문화를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훌륭한 교보재다. 광희는 재미를 위해 본능적으로 각 회사의 문화적 특징을 과장하거나 비트는 행동을 하는데, 이 행동 하나하나가 그 회사의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한다. (물오른 예능인의 동물적인 감이랄까. 보면서 광희 참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조직문화에 관심 있다면 네고왕을 보면서 다른 회사의 조직문화를 분석해 보는 훈련을 해보면 어떨까. 한번 눈이 트이면 내가 다니는 회사의 조직문화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평소에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우리 회사는 도대체 왜 맨날 그럴까?'라는 답답함 정도는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특정 회사의 조직문화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는 건 이번 글의 목적이 아니다. 각 회사의 인공물이나 눈에 보이는 현상을 통해 회사의 조직문화가 어떤지 파악하는 눈을 기르는 게 이번 글의 목적이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이번 글에서 틀린 분석이나 해석이 있다면 따끔한 댓글이나 의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