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R software/조직문화

북유럽에서 찾은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조직

by easyahn 2025. 12. 20.

 

업무상 북유럽에 있는 한 회사에 출장 갈 일이 생겼다.  80명 규모의 스타트업으로 부를 만한 조직이었다. 주로 한 일은 현지 직원 인터뷰. 다를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다를 줄은 몰랐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들었던 생각은 두 가지이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이상적인 조직이 여기에 있었네', '여기로 이직하고 싶다' 도대체 어떤 조직이었길래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따뜻한 가족 같은 문화

누가 뭐래도 나는 조직문화가 조직의 생존과 번영에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 조직의 생존과 번영이 조직문화라는 하나의 요인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 아이템이 기가 막히게 좋거나, 시장 환경이 망하려야 망할 수 없거나 (ex. 독과점 시장), 운 좋게 트렌드를 잘 만나 폭발적 인기를 얻거나 등등. 조직문화가 구려도 다른 요인으로 조직 자체는 생존/번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문화가 중요합니다!'라고 외쳐도 공허한 외침이 되기 쉽다. 

 

그래서 '조직문화가 우리 조직의 성공의 비결입니다'라고 많은 구성원이 입을 모아 말하는 조직을 만나면 반갑다. 아니 귀하다. 조직문화가 생존과 번영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번 출장에서 만난 조직이 바로 그랬다. 그동안 조직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어도, 조직의 강점을 물어도 모든 답변에 문화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Family-oriented라는 단어를 자주 들었다. 조직이 가족 같다고 말하는 구성원이 많았다. 함께 나오는 또 다른 단어는 Warm이었다. 조직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힘든 구성원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고 함께 격려하고 돕는 문화라고 했다. 실제로 만난 구성원들은 우리 팀을 환대해 주었다. 올해 여러 국가의 법인을 다녔지만 가장 환영받는 느낌을 받았다. 수시로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었고,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말했다. 구성원들끼리 자주 농담을 주고받고 많이 웃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일요일에 다음 날 출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없다는 내용도 여러 번 나왔다. 

 

진짜, 수평적으로 일하는 구조 

가족 같고 따뜻한 분위기가 일을 대충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무엇보다 창업 5년 만에 해당 시장 3위 기업으로 고속성장한 결과가 증명한다. 그동안 내가 보고서에만 그럴싸하게 적었던 (그리고 작동하지 않았던) 키워드들이 여기서는 실제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게 수평적인 조직이다. 이 조직은 수직적인 계층구조(Hierarchy) 개념이 희박했다. 실무자가 대표한테도 바로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할 수 있다. 각 개인은 오너십을 가지고 업무를 추진한다. 중요한 업무는 당연히 대표와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결재/승인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함께 논의하는 개념이다. 덕분에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훨씬 덩치가 큰 경쟁사에서 1년은 걸릴 일은 이 조직은 몇 달 만에 해치운다. 

 

이렇게 각 개인이 오너십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개인들의 일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진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정한 대로 했어요'라는 핑계를 댈 수 없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모두 내 책임이 된다. 물론 이런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려면 각 개인의 역량이 최소 1인분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 내가 만난 조직은 사무직 중에는 주니어급이 거의 없었다. 보통 7-8년 차에서 매니저급은 20년 차까지 일 좀 한다는 프로들이 모여 있었다.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역량 있는 개인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일하는 구조. 성과를 내기 위해 너무나 당연하지만 막상 한국 대기업 현실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일하는 방식과 구조이다.      

 

스킬보다는 조직문화 적합성

그렇다면 이런 문화와 구조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은 채용이었다. (이것도 역시나 수많은 사람이 계속 말해왔던 내용이다) 이 나라는 한번 채용되면 해고가 어렵다. 대신 수습 기간이 법적으로 6개월까지 보장된다. 그 기간에 계약을 종료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6개월 동안 이 사람이 우리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지 평가하고 적합하지 않으면 계약을 종료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평가 기준이다. 크게 보면 평가 기준은 2가지 방향이 있다.  채용하는 직무에 관한 경험과 스킬을 중심으로 보거나, 경험과 스킬은 부족해도 조직문화 적합도나 태도를 중심으로 보거나. 조직에 따라 한쪽을 중시하기도 종합적으로 보기도 한다.

 

내가 방문한 곳은 후자를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곳이었다. 극단적으로는 채용하는 직무와 유관한 경험이 없어도 그 사람의 기본 역량이 뛰어나거나 조직문화 적합도가 맞으면 채용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공장을 세팅하고 운영한 초기 멤버 6명이 있었는데 아무도 제조 백그라운드가 없었다. 정말 맨땅에 헤딩하며 제로 베이스에서 스스로 학습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기본 역량이 뛰어나니 결국은 해냈다. '관련 경험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스킬 적합도보다  조직문화 적합도'로 사람을 채용해도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조직문화 결정론은 경계해야 하지만

물론 많은 사람이 조직문화를 성공의 비결로 꼽았지만 실제로 그러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2명의 공동 창업자도 조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창업 전에 2명 모두 관련한 글로벌 대기업에서 리더급 포지션까지 올랐던 사람들이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 네트워크 등등 이미 많은 자산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했다. 구성원들도 업무를 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2명의 창업자와 이야기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창업자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도가 팍팍 느껴졌다. 

 

어쩌면 일시적인 시기를 잘 만난 덕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창업 후 첫 제품은 시장의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제품은 그야말로 반응이 핫했다. 마침 터진 코로나가 오히려 호재로 작동했다. 속된 말로 운빨이 터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믿어보고 싶다. 다른 여러 요인과 더불어 조직문화가 이 조직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다고.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분산된 책임 구조 속 자유롭게 소통하고 빠르게 의사결정하는 문화. 힘든 동료가 있다면 서로 다독이고 위로하며 함께 가는 문화. 그런 문화가 있었기에 이 조직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이렇게 문화로 성공하는 조직이 있어야만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사례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