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뒤에 추가할 별첨자료를 작성해서 부장님께 보고했다. 솔직히 말하면 별첨자료는 대충 작성했다. '보고서는 웬만큼 통과된 상태니까 별첨자료는 적당히 작성하자'라는 굉장히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앞으로 뉴스레터를 작성해서 직원들에게 뿌리겠다는 아이디어가 담겨있었다. 별첨자료는 뉴스레터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관한 예시였다. 평소에 뉴닉이나 어피티를 자주 봐서 뉴스레터를 흉내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정도면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피드백은 '다시 생각해 보라'였다.
"저는 이걸 보고 사람들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읽지도 않고 삭제할 내용으로는 작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충 넘어가겠지'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부장님은 내용을 꼼꼼히 읽고 피드백했다. 왜 이런 내용으로 작성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읽는 사람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등등. 하나하나가 모두 뼈 때리는 피드백이었다. 원래는 내가 미리 생각하고 작성해야 했던 것들이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내용보다는 형태에 신경을 썼다는 궁색한 변명을 하다가 결국 다시 작성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월요병이라는 핑계로 적당히 일하고 넘어가려 했다가 그야말로 딱 걸렸다. 부장님의 피드백을 듣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대충', '적당히' 같은 안일한 마음으로 일했던 걸 누구보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었다. 일요일에 읽은 <이나모리 가즈오의 인생을 바라보는 안목> 생각나서 더 부끄러웠던 것 같다.
"처음부터 너무 먼 길을 가려고 하면 기가 질린다. 자신의 나약함이나 무력함 때문에 쉽게 좌절할 수도 있다. 그러니 머나먼 목표는 잠재의식 속에 묻어두고, 눈앞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착실히 살도록 하자. 그렇게 하루를, 한 달을, 1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상상도 못 했던 먼 곳까지 도달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처음에 목표로 삼았던 까마득히 먼 길도 확 가까워져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에서는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책의 메시지는 어찌 보면 평범한데 요약하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매사 열의를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자' 정도다. 자칫 꼰대스러울 수 있는 메시지지만 직접 자신의 인생에서 실천한 내용을 말하고 있어서 무게감이 달랐다. 특히 성실함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정도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해야 할까. 책을 읽으면서 지독하게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경영의 신 정도 하는 거겠지만)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한 말이다. 예전에는 이 문장에서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에 방점이 찍힌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되는 대로 살다니 얼마나 자유롭고 좋아 보이는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고민하던 때에 만났던 문장이라 '애초에 그런 건 없어, 그냥 자유롭게 살아'라는 의미의 문장 뒤쪽의 메시지에 꽂혔던 것 같다.
지금은 이 문장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사실 이 문장의 핵심은 '하루하루는 성실하게'다. 성실하게 산 하루하루가 쌓여서 든든하게 삶을 지탱하니까 자신의 인생 전체를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비틀비틀거려도 결국은 다시 균형을 잡고 달리는 자전거처럼, 성실한 하루가 뒷받침된다면 결국은 자신의 인생이 옳은 방향으로 달려갈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 내일 출근해서는 잔머리 굴릴 생각하지 말고 성심성의껏 일하자. 작은 일이라도 허투루 처리하지 말자. 이렇게 말해도 내일 출근하면 또 마음이 바뀔 수 있지만...내일은 내일의 나를 믿어본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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