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어간 한 사이트*에서 '이럴 때 번아웃이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다'는 글을 보았다.
*밑미의 <번아웃러를 위한 한옥에서 즐기는 도심 리트릿> 소개글
-
일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적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적을 때
-
내가 하는 일에 비해서 보상과 인정이 적다고 느끼고, 이런 감정들이 누적되어 쌓일 때
-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을 때
-
일에 지나치게 헌신적이고 열정적으로 일을 할 때
'와씨 이거 다 내 이야기잖아. 그냥 우울했던 게 아니라 설마 번아웃이었나'
최근 몇 주 동안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생각처럼 진행이 안 되자 급격히 컨디션이 나빠졌다. 피로감이 누적된 탓도 있었다. 조직문화 진단 때문에 연초부터 쉬지 않고 8개월을 내리 달렸더니 진단이 끝나고도 정신적인 체력이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진행하던 새로운 프로젝트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진행이 잘 안 되자 단단했던 마음의 벽에서 뭔가가 툭-하고 빠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멍이 작아지기는커녕 점점 커졌다. 나중에는 찬바람이 숭숭 들어올 크기가 됐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내가 주로 느꼈던 감정은 '고립감'이다. 나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는데, 주변에서 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는다고 느꼈다. 시간이 갈수록 내 눈에는 문제가 명확하게 보이는데, 그 문제를 보지 못하는 주변 동료들이 야속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다른 부서 동료는 "대리님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너무 많은 걸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집에 와서 하소연을 늘어 놓으니 아내가 한 마디한다.
"일과 나를 동일시 하지마. 일은 일이고 오빠는 오빠야. 일과 나를 분리할 필요가 있어"
마침 아내가 사 온 책 <일꾼의 말>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주위의 수많은 일꾼들이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문제를 겪는다. 실수를 하거나 본인이 맡은 일이 어그러졌을 때,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무너진다. 이런 과정은 일꾼들이 일을 두려워하게 만들거나,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일꾼의 말>, p29
일과 나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거리감이 없다면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나 자신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온다.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만 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다. 새로운 일이 갑자기 끼어들고, 계획했던 일정이 밀리고, 내 상황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갖가지 요청들이 야속하게 쏟아진다. 일을 시작할 때는 차 한 대 없는 고속도로를 상상하지만, 현실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서울 한복판 퇴근길에 가깝다.
꽉 막힌 도로에서 스트레스 받아봤자 나만 손해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일이 안 풀린다고 내가 어떻게 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후에 일이 안 풀리는 것에 대해서는 초연해질 필요가 있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다. '고작' 일일 뿐이다.
아내와의 대화 이후로 일과 나를 의식적으로 분리하는 연습을 했다. '일은 일이고, 나는 나다'를 수시로 마음 속으로 외쳤다. 그 효과 덕인지 지금은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일이 안 풀릴 때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던 습관이 지금은 사라졌다. (물론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 그 다름을 존중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같을 수 없다. 다만 기회가 된다면 용기를 내서 동료들과 내 고민을 나눌 생각이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혼자서 '이럴거야'라고 단정 짓는 건 좋지 않다는 걸,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일단 액션버튼을 누르고 그 다음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일에 관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시는 정답이 아니다 (0) | 2021.01.09 |
---|---|
2021년 새해 소망: '잘하기'보다 '고유해지기' (0) | 2021.01.03 |
대충 일 하다가 부장님한테 딱 걸린 SSUL (0) | 2020.07.21 |
원하는 게 있다면 리더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하자 (0) | 2020.07.05 |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자 (0) | 2020.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