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부서에 새롭게 후배가 왔다. 하루는 그 후배가 부서 전원에게 공지사항을 안내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이해하려면 한참을 봐야했다. 이걸 이야기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메일을 보냈다. 이 내용은 이러이렇게 작성하면 더 좋다. 다음부터는 이런 식으로 내용을 구성하면 좋다는 메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더 신경써서 메일을 작성하겠습니다"
후배에게 온 답장을 받고 영 찝찝했다. 혼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사실 그 친구가 마음에 들었고 도움이 됐으면 해서 메일을 보낸 건데. '과연 내가 한 조언은 후배에게 도움이 됐을까? 그냥 꼰대질이 아니었을까?' 퇴근길에 마음이 무거웠다.
충고란 내게만 효과가 있는 기법의 열거다
"사람마다 근본적으로 다르며 성장하면서 더 달라진다. 따라서 리더의 조언이 팀원에게 꼭 효과가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 마커스 버킹엄, 에슐리 구달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마커스 버깅엄, 에슐리 구달)의 '5장_다섯 번째 거짓말:사람들은 피드백을 필요로 한다' 챕터를 보면서 피드백에도 요령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한 조언은 내 입장에서 생각한 최상의 해결책이다. 그런데 후배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회사에 대한 생각, 일에 관한 태도, 성장에 대한 욕구 등이 모두 나와는 다르다. 만약 나와 완벽하게 똑같은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한 조언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인간의 두뇌는 다를 수 밖에 없고, 내 조언이 100% 적용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봐야 한다. 남에게 하는 조언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과녁에 쏘는 화살일 수 있다. 책에서는 조언의 한계를 이렇게 표현한다. "어쩌면 충고란 오로지 내게만 효과가 있는 일련의 기법을 열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정적 피드백은 상대방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부정적 피드백으로는 학습이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부정적인 피드백은 학습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며 신경학 측면에서 말하자면 장애를 유발한다"
- 마커스 버킹엄, 에슐리 구달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내가 했던 조언의 또다른 문제점은 뉘앙스였다. 내 딴에는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며 정중하게 말하려 했지만 분명히 질책의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내가 한 조언은 "너는 지금 잘못을 했고 고쳐야 해"라는 의미의 부정적 피드백이었다.
문제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성장에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다. 학자들의 실험결과 오히려 학습에 장애가 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신경과학자들은 학생을 두 집단으로 나눈다는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을 할 때 두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실험을 했다.
긍정적 피드백을 받은 학생들은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했다. 부교감신경계는 '휴식-소화'계라고 불리는데 부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되면 인간의 행복감, 더 나은 면역 체계 기능, 인지 정서 지각 개방성을 자극한다. 이렇게 되면 두뇌의 여러 영역에 접근할 수 있고 더 많은 학습을 할 수 있다.
반대로 부정적 피드백을 받은 학생들의 두뇌에서는 교감신경계가 활발하게 반응했다. 교감신경계는 '투쟁-도주' 시스템으로 두뇌의 다른 부분은 침묵하게 하고 생존에 가장 필요한 정보에만 초점을 두게 한다. 심리학과 경영학 교수인 리처드 보이애치스(Richard Boyatzis)는 비판으로 생성되는 강한 부정적 감정은 "기존 신경회로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인지, 정서, 지각 장애를 유발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긍정적인 관심을 받을 때 가장 많이 성장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때 가장 적게 성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피드백 해야 하는가?
“우리는 조언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또 조언에 담긴 좋은 의도, 견해, 관대함, 순서 등에 자부심을 보인다 (중략) 우리는 완성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 앞에 제시한다. 그러나 가장 유용한 조언은 그림이 아니다. 그보다는 물감과 붓이 든 상자다. 최고의 팀 리더는 조언을 바라는 사람에게 이 물감과 붓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당신의 시작으로는 무엇이 보이는가? 당신은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 마커스 버킹엄, 에슐리 구달 <일에 관한 9가지 거짓말>
피드백의 근본적인 한계(조언은 나에게만 효과가 있다)와 부정적 피드백의 영향(부정적 피드백의 상대방의 성장에 도움이 안된다)까지 이해하고 난 다음 든 생각은 '그렇다면 어떻게 피드백 해야 하는가?'였다.
책에서는 답을 주는 피드백이 아니라 답을 찾을 수 있게 돕는 피드백을 하라고 한다.(완성된 그림을 제시하지 말고, 그보다는 물감과 붓이 든 상자를 제시하라) 나는 이걸 완성된 답을 주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라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과거, 미래와 관련한 3가지(아래 표 참조)를 물어보라고 말한다.
1. 현재 :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가 있는 것' 3가지는 무엇입니까?
-성공적인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해법과 사고, 행동방식에 개방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2. 과거 : 과거에 이런 문제가 있었을 때 당신이 대처한 일 중 효과가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삶은 패턴을 따르므로 이전에도 이런 문제에 부딪쳤을 가능성이 크고 그럴 때 한번쯤은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3. 미래 : 당신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떤 일이 효과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상대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당신은 그가 그것을 찾도록 도움을 준다는 전제하에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회사에서 함께 일하다 보면 항상 긍정적인 피드백만 할 수는 없다. 책에서는 이상적인 긍정 대 부정 피드백 비율이 3:1에서 5:1이라고 말한다. (존 가트맨(John Gottman)교수의 행복한 결혼생활 연구와 바버라 프레드릭슨(Barbara Fredrickson)의 행복과 창의성 연구 결과) 부정적 피드백 하나당 진가를 인정하는 관심이 3~5번은 필요하다.
3:1, 5:1이라는 비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평소에 칭찬을 많이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게 더 맞지 않을까. 막상 상대방을 칭찬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칭찬하려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찰해야만 가능하다. 만약 당신이 단점보다 장점을 더 잘 찾아내는 리더가 된다면 당신의 팀 또한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팀으로 변할 수 있다.
조언 이전에 상대방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정확한 한 지점도 그랜드 피아노처럼 분명히 존재한다. 그걸 알면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 지점이 바로 한 개별적 존재로서 그 사람의 고유한 ‘자기’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일에 관한 7가지 거짓말>을 읽던 중 정혜신 의사가 쓴 <당신이 옳다>를 우연히 읽었다. 경제경영서만 너무 읽어서 머리를 식히려고 선택한 책인데 좋은 피드백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우리가 피드백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꿔서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정혜신 의사는 상대방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존재에 대한 관심을 말한다. 책에는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바꾼 사례가 나온다.
하루는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는 현장에 할아버지들이 나타나 난동을 부린다. 저자는 할아버지들의 행패가 끝난 후 소란에 대해 묻지 않는다. 대신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묻는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세상을 떠난 아내, 자신을 거들떠 보지 않는 자식 이야기로 옮겨온다. 한참 뒤에 노인이 불쑥 말한다. “내가 아까 그 아이 럼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할아버지 본인 자체에 관심을 가지니까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는 놀라운 현상이 생겼다. 만약 그 할아버지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조언하거나 가르치려 들었어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변했을까?
책을 읽고 후배에게 조언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대신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요즘은 어떤게 고민인지 지금보다 더 자주 물어야겠다. 피드백은 충분한 관심을 가진 다음 해도 늦지 않다.
추신: 피드백 방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추가로 다른 책을 더 찾아볼 생각이다. 사실 이 책에서는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다. 피드백에 관련해서 책 <실리콘밸리의 팀장들>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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