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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관한 생각

AI가 바꾸는 일하는 풍경

by easyahn 2025. 4. 30.

사무실에 스며든 ChatGPT 

퇴근하려고 사무실을 나서던 순간이었다. 팀 동료의 모니터 속 익숙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ChatGPT가 답변을 쏟아내는 화면이었다. 몇 주 전부터 ChatGPT를 팀 플랜으로 유료 구독해서 활용하고 있다. 그 뒤로 사무실에서 ChatGPT를 사용하는 장면은 일상이 됐다.

 

원래도 무료 플랜으로 ChatGPT를 잘 쓰고 있었다. 가장 쉽게, 자주 쓰는 용도는 엑셀 함수를 찾을 때이다. 문장형으로 원하는 맥락을 물어보면("엑셀에서 A1셀과 B1셀에 값이 있는데 이걸 ~~ 해서 C1셀에 출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대체로 정확한 함수가 출력된다. 바로 오른쪽에 복사 버튼도 있어서 출력된 엑셀 함수를 바로 복붙해서 사용할 수 있다. 

 

예전에는 엑셀 함수가 막히면 한참 구글링을 했다. 검색해도 내가 원하는 정답이 안 나오거나, 애써 머리 굴려서 입력한 함수가 오류값을 출력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때마다 머리에 열 좀 받았다. 요즘은 GhatGPT 덕에 함수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이 확 줄었다. 나 같은 엑셀 초보에게는 이 정도 변화도 정말 획기적이다. 

 

유료 모델을 쓸 때는 '심층 리서치' 기능에 놀랐다. 특정 주제를 꽤 상세하게 정리해 준다. 그것도 신뢰할만한 자료를 근거로. 이 기능을 활용해서 "해외주재원에 관한 최근 5개년 연구의 주요 내용에 대해 알려줄래?"라고 물어보니 꽤 퀄리티 있는 답변이 나왔다. 답변의 근거가 되는 링크도 달아 놓아서 원문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ChatGPT 열풍이 불고 나서 AI를 똑똑한 개인비서에 비유하는 걸 많이 들었는데, 왜 그런 비유를 쓰는지 체감했다. 만약 직접 조사했으면 꼬박 하루는 소비했을 일을 ChatGPT는 1시간도 안 되어 끝냈다.

 

정보 접근의 허들이 사라진 시대

답변에 대해 "네가 답변한 근거가 어떤 거야?"라고 물어보니 여러 소스가 나왔다. 그중에 <International Human Resource Management>라는 책이 괜찮아 보였다. 찾아보니 글로벌 인사 운영에 관한 교과서 같은 책이란다. PDF파일을 찾을 수 있어 목차와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봤다. 평소에 궁금했던 글로벌 인사 운영에 대한 개념과 사례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만약 GhatGPT의 심층 리서치 기능을 활용해 찾아보지 않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책이었다. 

 

좋은 논문을 타율 높게 찾을 수 있게 됐다

 

김성준, 이중학 교수님이 티타임즈 유튜브 채널에서 AI와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영상을 봤다. 생성형 AI가 연구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묻자, 생성형 AI에게 물어서 논문을 찾는 일이 많아졌고 전보다 좋은 논문을 타율 높게 찾을 수 있게 됐다는 답변이 인상 깊었다. 실제로 업무를 하면서 느꼈던 지점이다. 논문뿐만이 아니다. 각종 통계 자료를 비롯하여 인터넷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질 좋은 정보를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만 알았을 고급 정보들이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제공되는 시대가 됐다. 질 좋은 정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허들이 사라진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 자체가 힘이자 권력이었다. 과거에는 회사 선배들에게 물어물어 좋은 책, 자료의 소스를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이 GhatGPT에게 물어보면 된다. 심지어 선배들도 몰랐을 정보의 소스까지 알려준다. 과거라면 회사에서 5년 정도는 굴러야 알았을 지식과 정보를 ChatGPT를 잘만 활용하면 좀 더 짧은 시간 내에 습득할 수 있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 더 이상 목에 힘줄 수 없게 됐다. 앞으로는 주니어와 시니어의 지식 격차가 줄어드는 속도가 과거보다 빨라질 것이다. 

 

관점이 차이를 만든다

만약 지식의 양으로 시니어와 주니어, 고수와 하수를 구분할 수 없다면 이제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나는 관심이 격차를 벌리고, 관점이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생성형 AI에 물어보기만 하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일단 뭐라도 '입력'해야 정보가 출력된다는 점이다. 뭐라도 입력하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다.  

 

'최근에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개념을 알았는데, 전문 서적에서는 이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국내 사례는 이런데 혹시 글로벌 사례나 타사 사례는 없을까?' 연애 기사 검색하듯 자신의 일에 대해 ChatGPT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순 구글링보다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질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정보를 취득하며 경험을 쌓아가면 자신만의 관점이 생긴다. 

 

'이 사람은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가 다르구나'

 

일을 하며 정말 고수라고 느꼈던 사람들은 단순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문제를 보거나, 보다 높고 넓게 사안을 바라보는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은 진짜'라고 느꼈다. 특히 연차가 쌓일수록 관점의 차이가 경쟁력의 차이를 만든다고 느꼈다. 

 

관점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안다고 생기지 않는다. 습득한 지식을 기반으로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쌓여야만 자신만의 관(觀)을 가질 수 있다. 쉽고 빠르게 질 좋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느리고 깊게 생각하는 일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참고자료

티타임즈TV,  <경영자가 그록대학, 퍼플렉시티대학 안 다니고 관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