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실무자가 되려면
조직문화 팀의 업무 파트너는 CEO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각 조직의 장을 맡고 있는 임원들이 조직문화 팀의 업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리더는 조직문화의 창조자이자 수호자’로서 조직문화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조직문화팀의 업무 파트너는 리더급이 되어야 한다.
"최소 부사장 보고까지는 가야 한다. 가능하면 사장님 보고까지 가야 한다"라고 작년부터 부장님한테 줄기차게 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왕이면 위를 움직여야 효과가 커진다. 문제는 보고라인이 높아지다 보니 신경 쓸 게 많아진다. 무엇보다 '설득'을 잘해야 한다.
보고라인이 높은데 말도 안되는 논리로 계획안을 들고 가면 깨질 게 당연하다. 영화 대부의 명대사처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않으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그럼 어떤 제안이 상대방이 납득할 수 밖에 없는 제안일까? 지난 몇 년간 고민했고 요즘도 고민하고 있는 주제다. 나름의 요령을 정리해 봤다.
회사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확신을 주자
몽고가 금나라를 칠 때 태종은 한 성을 점령했다. 이때 태종은 성의 모든 사람을 죽이려 했다. 명재상이던 야율초재는 무고한 사람들을 이렇게 희생하는 것은 몽고의 잔인성만 부각하고 금의 원한만 일으키기에 적절하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떻게 '직언'을 할지 고민했다.
"폐하 이는 잔인한 행동이니 죽이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태종이 잔인한 폭군이라는 뜻이고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자신까지 해를 당할 우려가 있었다. 야율초재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금나라에는 진기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다 죽인다면 폐하는 귀중한 물건을 가지실 기회를 잃게 됩니다. 이들을 살려서 귀중한 물건들을 더 많이 만들게 하신다면 폐하의 부강함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태종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야율초재를 기특하게 기뻐하며 금화를 주었다고 한다.
신수정의 리더십 코칭 "상사에게 직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교훈은 '상대방의 이득을 섞어서 말하면 설득이 쉬워진다'이다.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일과 관련해 상급자를 설득해야 한다면 자신의 일이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걸 어필하자. 회사의 올해 경영목표라든지, 최근 조직 내 이슈사항을 해결하는데 내 일이 기여한다고 말하자.
작년에 조직문화 진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진단을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회사의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조직문화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수준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찾는 진단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이득을 위해서,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서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데 누가 반대할 수 있을까. 물론 실행 상의 한계점이나 다른 이유들로 제한이 걸릴 수 있지만, 최소한 일을 하는 이유(why)에 있어서만큼은 반박 불가다.
추상화 레이어를 오가며 생각하자
회사에서는 실무자, 부장, 실장, 본부장, CEO 식으로 다양한 레이어가 있다. 내가 기획한 일의 덩치가 크고 영향을 주는 범위가 넓을수록 더 높은 직급을 설득해서 오케이를 받아내야 한다. 내가 익힌 요령은 상위 직급의 관심사를 빨리 파악해서, 거기에 내 일을 일치(Align) 시키는 것이다.
최근 CEO의 관심사항은 글로벌이다. 실제로 국내 시장은 정체기에 들어섰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은 회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보다 덩치가 큰 플레이어들과 싸우려면 조직 내 모든 부분의 역량이 타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면 일을 시작하는 why가 달라진다. 단순히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합니다", 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하기 위해서는 조직문화에서도 경쟁우위를 차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게 된다. 조금더 CEO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일이 된다. 당연히 설득에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상위 직급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방법은 특별한 게 없다. CEO 메시지, 타운홀 미팅 등 소통 기회가 많은 조직이라면 조금 더 쉬울테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냥 가장 잘 알 것 같은 사람한테 대놓고 물어봤다. 본부장 보고를 들어갔다가 살짝 수다 떠는 분위기가 됐길래 "CEO의 최근 관심사항이 어떤 건가요?"라고 물어봤다. 본부장님은 편한 분위기 속에서 술술 대답해주셨다. 그 외에도 평소에 본부장님이 흘리듯 하는 이야기도 메모해두는 편이다. 그 속에 힌트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레이어의 관심사를 반영하면 상대적으로 아래 레이어는 설득이 쉬어진다. CEO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일이라는데 본부장, 실장 급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것도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본부장이 되어도 결국에는 최종 결정권자인 CEO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제가 이끌고 있는 조직에서 CEO의 관심사를 이렇게 반영하고 있습니다'라고 어필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CEO에게 말이라도 꺼낼 수 있는 뭔가를 가져오면 땡큐 아니겠는가.
결국은 입장 바꿔 생각하기
길게 써놨지만 결국 설득의 기본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기 아닐까. 상대방의 고민은 뭘까,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고민을 내가 맡은 업무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상대방 입장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 등등.
실무자 입장에서는 당장 뭔가를 벌리고 싶겠지만 우선 차분히 생각해 보자. 실무자 관점이 아닌 CEO, 본부장, 부장 관점에서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을 생각해보자. 똑같은 일이라도 그들에게 맞는 언어로, 그들의 채널에 주파수를 맞춰서 말하자. 내가 아닌 상대방의 언어로, 그들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춰서 말한다면 어느새 설득을 잘하는 실무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실무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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