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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 소통 프로그램 사례 : 제주맥주의 KSS, 힐링페이퍼의 KPT

easyahn 2021. 3. 1. 23:00

여러분 조직의 소통은 안녕하십니까

: 조직 내 소통에 관한 기존 인식의 문제점

 

조직문화 진단을 하거나, 직원 인터뷰를 해보면 항상 조직 내 소통 부족이 상위권에 나온다. 그런데 지금까지 회사차원에서 나름의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조직 내 소통 활성화라는 명목 하에 각종 행사를 진행하거나(체육대회, 워크숍 등), 소통 기회를 만들기 위해 간담회(라고 쓰고 회식이라 읽는다)를 해왔다. 하지만 소통이 부족하다는 직원들의 불만은 줄어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찾은 문제는 '소통'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놓고 조직과 직원들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말하는 소통은 '업무적, 제도적인 것에 관한 소통'이다. 리더가 업무지시를 할 때 맥락 공유를 안 해준다던지, 지나치게 서류 작업이 많다던지, 쓸데없는 회의가 많다던지 하는 것들에 직원들은 문제의식을 가진다. 이런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고, 실제로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직원들은 소통이 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감정적, 정서적 소통' 차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히 애로사항을 듣고 맛있는 걸 사줘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정도의 개념이다. 그러면서 '그래 너 힘든 거 알아. 근데 원래 다 그런거야. 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야. 참고 버티자'라고 말한다. 직원들은 업무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바라는데 회사는 개인차원에서 임시방편적인 해결책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소통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직원들의 냉소만 강화된다.  

 

감정적인 부분을 케어하는 소통 프로그램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춘 소통 프로그램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사례는 제주맥주의 KSS 카드 활용(폴인의 <죽어가던 제주맥주 팀워크를 살린 TMI 문화 : 소통> 리포트 참고)과 힐링 페이퍼(강남언니)의 KPT(<Wanted Con : 리더십으로 해결하라> 참고 ) 제도다.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소통 프로그램 사례 

: 제주맥주의 KSS, 강남언니의 KPT

 

* 제주맥주의 KSS 제도

지금은 코스닥 상장을 앞둘 정도로 잘나가는 제주맥주지만 한때는 마케팅팀이 깨질 뻔한 위기상황이 있었다. 권진주 이사와 직원 간 소통이 안 되어 조직 내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하루는 한 직원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권진주 이사에게 보고하는데 카톡 알람으로 권진주 이사 욕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식은땀 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위기감을 느낀 권 이사는 소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중 하나가 'KSS 카드' 운영이다. 계속해야 할 것(Keep), 그만해야 할 것(Stop), 시작해야 할 것(Start), 이 세 가지를 자신을 포함한 팀원들 모두 서로서로에게 적는 활동을 한다.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안들을 KSS카드를 통해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권 이사 카드에 적힌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 업무할 때 인상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 세련되게 말하려고 하면 오히려 의도를 더 알 수 없다. 사실관계를 더 명확하게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 야근을 그만하면 좋겠다. 야근이 일 잘하는 조직문화인 것처럼 보인다.

 

권 이사는 자신이 받은 카드 내용을 마케팅실 전원 앞에서 그대로 읽어주고 피드백한다. 먼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표현을 전하고(심리적 안정감을 형성하는 3단계 방법론 중 '생산적으로 반응하기'에 해당. 자세한 내용은 여기 클릭) 자신이 생각하는 개선점과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 지점을 명확히 밝힌다. 집에 돌아가 일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무실에서는 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등 실제로 변하는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여준다. 이런 노력들은 제주맥주의 분위기를 바꾸게 된다. 

 

* 힐링페이퍼(강남언니)의 KPT 제도 (Keep-problem-try)

 

강남언니 앱을 운영하는 힐링페이퍼는 회의가 끝나면 항상 KPT를 한다. 계속해야 할 것(Keep), 문제였던 것 (problem), 새롭게 시도할 것(try)을 항상 회의가 끝나면 논의하고 정리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회의를 하면 회의록 상단에 저번 KPT를 리마인드 한 다음 회의를 시작한다.      

 

힐링 페이퍼에서 KPT제도를 운영한 건 기존에 운영하던 회의방식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10분, 20분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정작 이야기를 해야 되는 사람은 한 마디도 못하는 등 회의의 생산성이 급격이 떨어졌다. 

 

처음 KPT를 운영했을 때는 problem, try만 나와서 우울했다고 한다. 하지만 2-3달 동안 KPT를 운영하며 하나씩 고쳐가다 보니 나중에는 회의 시간은 줄어들고 회의 목적은 달성하는 등 전반적인 회의 퀄리티가 올라가게 된다. 나중에는 팀장 회의뿐만 아니라 경영진 회의를 비롯한 모든 정기 회의에 KPT 제도를 활용하게 된다.     

 

힐링 페이퍼 사례에서는 KPT의 장점을 구성원이 스스로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활용하는 단계까지 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한 때 KPT가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오히려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KPT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하며 다시 KPT 부활시킨다. 원티드 Con에서 사례발표를 했던 김윤혁 리더님은 '돌아보기만 해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지'했던 게 KPT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말한다.    

 

KSS, KPT를 시작하기 전에 생각해볼 문제

:우리 조직은 구성원의 피드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여기까지 읽으면 '당장 우리 조직에도 KSS, KPT제도를 도입해야지!'라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하기 전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먼저 '우리 조직은 구성원의 피드백을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당장 해결할 수 없는 크리티컬 한 문제가 튀어나왔을 때 어떤 태도로 대응할 것인가'도 생각해 봐야 한다. 관련해서 직접 겪었던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다.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 한 스타트업에서 3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2달짜리 단기 인턴을 했던 적이 있다. 그 회사에서는 매주 금요일 Good-So-bad 미팅이라는 걸 했다. 좋았던 점(Good), 보통이었던 점(So-So), 나빴던 점(bad)을 구글 시트에 적은  다음 공개적으로 함께 이야기하는 회의였다. 좋았던 점은 칭찬하고, 나빴던 점은 고치자는 의도를 가진 회의였다. 

 

인턴을 시작한지 2주 정도 지났을까? 인턴들의 불만이 점점 높아져갔다. 회사 측에서 공고를 낼 때는 다양한 사업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서비스에 업로드할 콘텐츠를 '찍어내는' 일을 인턴들에게 시켰기 때문이다. 인턴들의 몰입도는 당연히 떨어져 갔고 중도 이탈자가 다수 생길 조짐이 보였다. 

 

나는 인턴들이 갖는 불만사항을 bad에 적었고 공개적으로 회의시간에 문제제기를 했다.(지금이라면 당연히 안그러겠지만 그때만 해도 사회생활 경험이 없었고 그 당시의 나는 스타트업은 뭔가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출근 직후에 회의실로 불려 갔다. 나는 졸지에 개인의 불만을 인턴 전체의 불만으로 몰고 간 역적이 되었고 인턴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흐린 죄로 '경고'를 먹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다음 다수의 인턴이 프로그램에서 중도 하차했다. 

 

경고를 먹은 직후 한동안은 멘탈이 나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회사를 꽤나 좋아했고 오히려 인턴 프로그램이 좌초될 위기상황이라고 판단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회사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았다. 빨리 인턴 기간이 끝나기를 바라며 시키는 일 이상은 하지 않았다.   

 

내가 인턴을 했던 회사의 Good-So-bad 미팅이나 제주맥주의 KSS, 힐링 페이퍼의 KPT 모두 비슷한 제도다. 만약 이런 제도를 통해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을 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쓴소리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런 제도는 운영하는 의미가 없다. 만약 당장 해결이 어려문 문제라면 최소한 왜 해결할 수 없는지 구성원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태도라도 보야줘야 한다.     

 

끊임없이 우상향하는 피드백 루프 구축하기

 

조직내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본다. 단순히 웃고 떠들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소통이 아니라, 작더라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야 한다. 

 

조직 내 소통이란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 목표-문제-진단-계획-실천의 싸이클을 무한히 반복해서 점차 우상향하는 것과 같은 형태를 그려야 한다. 그래야만 수없이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은채 문제가 유지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