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몇 개월 뒤에 있을 신임 CEO 부임에 맞춰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 전략방향을 새롭게 수립하는 과업이 부서에 떨어졌다. 이번에 수립하는 조직문화 전략 방향은 신임 CEO가 부임한 직후 조직 전체에 공표할 예정이었다. 앞으로 몇 년의 방향성을 책임질 내용이었기에 그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CEO와 관련된 일이고 회사 전체의 조직문화 방향성을 잡는 일이다 보니 우리 부서의 최선임 과장이 일을 맡았다. 과장은 부서원들에게 자신이 참고할 수 있는 아이디어 제출 정도를 요구했다. 내게 요구되는 역할은 딱 그 정도였다.
나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을 이번 전략 방향에 적용하고 싶었다. 작년 1년간 조직문화 진단을 진행하며 보고 들었던 수많은 것들, 내가 느끼는 우리 회사 조직문화의 문제점, 회사의 경영목표 달성을 위해 조직문화가 나아갈 방향 등등.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조직문화 전략방향 수립은 선임 과장의 개인 업무였다. 공동으로 진행되는 팀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내가 제시한 의견이 반영되더라도 솔직히 그건 과장의 업무성과가 된다.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1. 다른 사람의 성과가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최대한 내 생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2. 요구되는 수준의 아이디어만 제시하고, 나는 내가 맡은 다른 업무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1번을 선택했다. '내 아이디어를 안 쓰고는 못 배길 걸?' 무력시위하듯 좋은 의견을 쏟아냈다. 내가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방향으로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 전략방향이 수립되는 것. 누구의 성과가 되느냐는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보고된 조직문화 전략방향 대부분에는 내 생각이 반영되었다.
경영진이 새로 수립된 방향성을 만족해 했다는 이야기를 오늘 들었다. 특히 내가 핵심적으로 주장했던 몇 가지 키워드들이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평소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경영진의 반응을 들려준 선임과장은 내게 한 마디를 했다.
“지안 씨가 초반에 준 아이디어가 도움이 됐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이 쿵-내려앉았다. '지안 씨 아이디어 아니었으면 이번 일은 진행 못할 뻔했어'라던가 '지안 씨 덕분에 잘 끝냈어' 같은 말이 나와야 정상 아닌가. 마치 본인이 다 한 일에 내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는 뉘앙스였다. 내가 써준 문서에 있는 표현을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썼으면서 단순히 도움이 됐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한테 물어가면서 내용을 작성하고는 이제와서 본인이 다 한 척을 한다고? 짧은 순간 허탈함, 씁쓸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오늘 있었던 일을 퇴근 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나는 회사에서 내가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번에도 나는 선택했다. 내 선택은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후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었다. 비록 내 성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건 선택에 따라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었다. 어찌됐든 원하던 바는 이루어졌고 그러면 그걸로 된 거다.
만약 위의 선택지에서 2번을 선택했다면 나는 만족했을까? 아니라고 본다. 내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수립된 전략방향을 보며 '이건 아닌데'라고 불만스러워 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디어를 물어볼 때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말할 걸'이라고 후회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선택에는 그 나름대로의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선택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딘가 부족한 보기 몇 개를 앞에 두고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불만족, 아쉬움은 따라오게 된다.
나는 이번에 내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아쉬움은 얼른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기꺼이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