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관한 생각

무시는 정답이 아니다

easyahn 2021. 1. 9. 19:28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팀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형적인 징징이 타입이었다. 업무 회의를 시작하면 일단 이래서 힘들다 저래서 힘들다 하소연부터 시작했다. 거기다 다른 사람을 자주 흉봤다. 내가 보기에는 본인 잘못도 있는데,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 같았다. 업무에 대한 이해도, 집중도도 나보다 훨씬 떨어졌다. 어느 순간 '이거 내가 혼자 다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싹텄다.

 

후배라면 따끔하게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텐데, 심지어 직급이 나보다 높았다. 처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스킬을 시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프로젝트 기간이 길어질수록 들어야 하는 하소연의 양이 늘어갔고, 내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그때부터 전략을 바꾸었다. 은근히 무시하기 스킬을 썼다.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거나 업무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하루는 나에게 뭔가를 물어보았는데 모니터를 보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네네'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하는 건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다. 아마 팀원을 무시하는 마음이 그런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내가 반대입장이었어도 기분 나쁠만한 행동이었다. 그 뒤로 사무실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불편한 몇 시간이 지속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내 행동을 반성했다. 이유가 뭐였든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는 잘못되었다. 예전에 다른 사람에게 무시당했던 적이 있는데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받고 싶지 않은 대접은 남에게도 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팀원과의 관계 악화는 일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차피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는 좋든 싫든 계속 부딪혀야 한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없다. 

 

이제는 팀원을 존중하는 제스처를 보이려 노력한다. 팀원이 말을 하면 꼬박꼬박 대꾸하고 적당히 리액션도 한다. 단 남 흉보는 말에는 반응은 하되 동조는 하지 않는다. 말한 사람이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반응한다.

 

신기한 건 마음을 바꿔먹자 팀원의 단점말고 장점이 보였다. 팀원에게는 내게는 없는 사내 네트워크가 있었고, 연차에서 오는 경험이 있었다. 프로젝트 초반 사내 직원 인터뷰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건 팀원의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대부분을 수용한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그제야 '혼자서 다했다'라고 생각했던 이번 프로젝트가 팀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음을 깨달았다.  

 

회사는 팀 플레이라는 걸 잊지 말자. 아무리 뛰어난 스트라이커라도 어시스트해주는 선수가 없으면 골을 넣을 수 없다. 강속구를 뿌리는 투수도 공을 받아줄 포수가 없으면 미트에 공을 꽂을 수 없다. 혼자서 아무리 잘나도 함께하는 팀원이 없으면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상대방의 단점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장단점 중에 어떤 면에 집중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장점에 대한 집중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지고, 단점에 대한 집중은 상대방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일이 잘되게 하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명확하다.

 

디즈니의 전 CEO 밥 아이거는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픽사, 스타워즈, 마블을 인수하는 굵직한 딜을 성사시켰다. 밥 아이거는 상대방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봤고, 잘못 보다는 그 사람이 이뤄낸 것에 집중했다. 존중을 통해 상대방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다. <디즈니만이 하는 것>을 읽으며 느꼈던 '존중'의 힘을 잊지 말자. 

 

올 해의  첫 반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