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기록&회고

조직문화 진단 회고 4편_잘한 점과 못한 점 따져보기

easyahn 2020. 10. 11. 15:05

진단에 관해 추가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중 Wanted에서 'People Analytics'를 주제로 온라인 세미나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내 블로그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김성준 님, 평소에 SNS에서 인사이트를 얻던 강지상 님 두 분이 연사로 나온다는 걸 보고 바로 신청했다. 

 

이번 글은 온라인 세미나를 듣고 느낀 점이 있어서 추가로 작성한다. 내가 했던 진단에서 잘한 점, 아쉬운 점, 다음 진단에서 보완하고 싶은 점을 정리했다.   

 

* 이번 진단에서 잘한 점

1. 조직문화 상의 문제들을 발굴했고, 최고 경영진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진단을 통해 우리 회사 조직문화 상의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다행히 진단 결과에 대해 경영진이 공감했고 긍정적인 후폭풍도 있었다. 처음 시도한 진단 치고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 낸 거면 '어느 정도'는 성공이라고 생각한다.(100% 성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번 글을 끝까지 읽으면 알게 된다)

 

최근 들어 조직문화 담당자의 일은 설득이 전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목적에 따라 설득 대상이 경영진이냐 직원들이냐가 다를 뿐. 이번 진단을 통해 데이터가 갖는 설득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역량을 쌓아서 나만의 무기로 확실히 갖추고 싶다.  

 

데이터가 갖는 설득의 힘을 보았다

2. 후속 활동에 대한 동력을 얻었다

이미 진단을 실시하기 전부터 문제라고 생각하고 것들이 있었다. 그런데 진단 실시 이전에는 문제를 문제라 말할 수 없었다. "그거 근거 있어? 너만의 생각 아니야?"라는 반론을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단을 통해 내가 생각한 가설이 실제 문제임이 입증되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후속대책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걸 실행하자고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어야 하나....그냥 해도 됐을 텐데'라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근거도 없이 들이대면 이런 반응이 나올지도...

3. 부서의 업무방향을 틀었다

어떤 회사들은 조직문화 팀이 각종 행사, 이벤트 하는 부서로 인식된다. 내가 처음 부서에 배치받았을 때 우리 부서도 그랬다. 혼자서 조직문화라는 주제를 파면 팔수록 조직문화 팀이 해야 할 일은 단순 행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고 팀에 온 지 1년도 안 된 놈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싹 다 갈아엎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도 없었다.(어떤 조직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위계가 명확한 우리 조직은 그게 힘들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기획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은근슬쩍 부서의 업무방향을 틀 수도 있다. 나한테 조직문화 진단은 부서의 업무가 흐르는 물길을 바꾸는 작업이었다. 부서 업무의 밑바닥을 새로 다지는 작업이었다. 진단을 통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걸 해결해야만 하고, 자연스럽게 기존 업무는 조정할 수밖에 없다. 진단과 후속활동이라는 하나의 큰 사이클을 만들어서 부서의 롤을 아예 바꾸는 것도 내게는 중요했다. 다행히 경영진이 진단 결과에 공감함으로써 진단 후속 활동은 우리 부서의 업무 1순위가 됐다. 내가 생각한 그림처럼 되어서 다행이다.  

 

 

나의 노림수가 제대로 먹혔닷

 

* 이번 진단에서 아쉬운 점

1. 강점과 약점을 균형 있게 분석하지 못했다

조직문화 진단이 끝나고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성준 님의 페북에서 <조직문화 진단 유감>이라는 짧은 글을 봤다. 이 글을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성준 님은 대부분의 조직문화 진단이 조직의 문제점만 드러낸다는 점을 지적했다. 어찌 됐든 조직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강점이 있는데 그 부분은 드러내지 않고, 문제만 잔뜩 드러내니 진단 보고서를 보면 산소 호흡기를 붙이고 있는  환자처럼 느껴진다는 뜻이었다.

 

진단 회고 1편을 보면 알겠지만 나도 시작은 전형적인 의사-환자 모델로 접근했다. 문제점을 찾아내서 그걸 해결해서 더 건강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접근이었다. 특히 일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내가 생각한 문제점과 관련한 문항들을 세팅했고, 여기서 문제점들이 다수 발견됐다. 나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믿지만, 강점과 약점을 균형 있게 고려하지 못한 점은 뼈 아프게 느껴졌다. 

 

성준 님의 페북 글을 보고 결과보고서 작성 시에 강점 부분도 신경 써서 담으려고 했다. 실제로 진단을 통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우리 조직의 강점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제점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문항들로 세팅되어 있다 보니 강약점을 균형 있게 담지는 못했다. 굳이 비율로 따지면 강점 30%에 약점 70% 정도가 담겼다. 다음에 진단한다면 우리 조직이 살아남는 조직문화상의 강점도 좀 더 명확히 밝혀내고 싶다.      

 

항상 공부가 되는 성준님의 글

 

 

2. 적당한 수준의 문제만 드러냈다

조직문화상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경영진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경영진이 쉽게 감당 가능한 범위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실은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조직문화의 깊은 문제. 이건 이번 진단 보고서에는 빠져있다. 솔직히 용두사미라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공을 멋지게 드리블해서 수비수도 3명 정도 제치고 골문 앞에서 멋있게 슛을 때렸는데 정작 공이 데굴데굴 맥없이 굴러간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직문화 진단은 절반의 성공이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현재 우리 부서의 조직 내 위치와 우리 부서의 역량을 고려했을 때 과연 감당 가능한 문제인가?'가 문제를 끌어올리는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심리적 안정감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이걸 어떻게 조직 내에 정착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우선 부각하지 않았다.  

 

조직 내 부서의 위치, 부서원들의 역량 이 모든 게 더 나아져야 이번에 건들지 못한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은 지금 꺼낸 문제들부터 잘 해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 조직문화팀의 입지를 키우고 부서원들의 역량도 더 올라가야 한다. 혼자서는 절대 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다음 진단 때 보완해야 할 점(+추가로 해보고 싶은 일)

1. 주관식 응답을 분석해야 한다

원티드 컨퍼런스를 통해 주관식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달았다. 솔직히 이번 진단 때는 주관식 응답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 이건 변명의 여지없이 그냥 내 역량이 부족했다. 역량을 보완해서 다음번에는 주관식 데이터도 분석해 보고 싶다. 

 

2. 외부데이터 분석해서 경쟁우위 요소 밝혀내기

이건 기존 진단과는 좀 다른 프로젝트인데, 외부 데이터를 활용해 우리 조직을 분석하는 것이다. 역시나 원티드 콘퍼런스에게 아이디어를 얻었다. 외부 데이터를 활용해 분석하면 우리 조직이 경쟁우위를 갖기 위해 일하는 방식에서 무엇을 강화하거나 보완해야 하는지가 나온다. 만약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조직문화 팀도 경영에 기여한다는 명확한 조직 내 인식이 생기지 않을까.  

 

3. 해외 법인 컬처 맵 만들기

최근 우리 조직도 글로벌 사업이 강화되면서 해외법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나는 문화적 맥락의 차이에 따른 조직문화상의 문제가 각 법인들마다 있을 거라고 본다. 최근에 에린 마이어의 컬처 맵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에린 마이어 식으로 각 법인별 문화적 차이를 명확히 밝혀낼 수 있다면 법인들이 겪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건 정말 먼 미래의 아이디어고 이걸 해내려면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지 감도 안 잡히지만 말이다. 

언젠가는 이런 걸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이미지 출처: 에린 마이어, <문화 지뢰밭 건너기>, 2014, HBR)